4. 문명의 탄생 - 고대 오리엔트
가. 하천과 관개(灌漑)농업
문명의 4대 발상지 하면 나일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황하 등의 강들이 나옵니다. 이 강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막이나 황토층을 관류(貫流)하고 홍수가 자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이런 종류의 강들이 이것 외에는 없을까요?
미국의 코로라도 강이나 몽골의 오논 강, 러시아의 볼가강도 이런 류의 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문명이 발생하지 못한 것은 장기저장이 가능한 밀, 보리, 콩, 벼, 옥수수 등의 식량자원이 주변에서 야생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홍수는 많은 재앙을 주지만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침전물이 쌓이게 되어 푹신하면서도 기름진 충적(沖積)평야가 만들어 집니다. 기름진 평야지대,
비료는 고사하고 땅을 일구는 도구조차 변변치 못했던 고대인들에게 이곳은 홍수만 잘 다스리면 인구부양력(扶養力)이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판 사판의 심정으로 사람들은 모여들게 마련이고 따라서 문명이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나. 고대오리엔트란?
Orient 즉 동양(東洋)이라고 하면 아시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고대 오리엔트(영 ; Ancient orient : 독 ; Vorderer Orient) 하면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지역으로 한정됩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본 동양이라는 뜻이지요. 같은 시기의 중국인들도 머나 먼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중앙아시아도 잘 몰랐기 때문에 막연히 서역(西域)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서 아시아가 됩니다. 이것은 일찍부터 이 지역에 대한 조사,발굴, 연구가 서양인들에 의해 이루어 졌고 이것을 다시 학문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지도(地圖)적인 위치 보다는 문화적인 지역으로 보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다. 홍수와의 전쟁
홍수(洪水)라고 하면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넓은 집수(集水)면적에 비해서 하천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주변으로 물이 흘러 마치 바다처럼 되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그 곳의 상황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Tigris와 Euphrates 두 강 사이의 평야라는 뜻을 가진 Mesopotamia와 nile 이 흐르는 이집트는 오늘날의 이라크와 이집트공화국에 해당되고 이곳의 1년 강수량은 많아도 200mm를 넘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비가 없거나 일부 지역에 극소량이 내릴 뿐입니다.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봄과 가을이 없고 바그다드의 7월 평균 기온이 35°C, 이집트는 이 보다 더 높고, 겨울이라도 밤에만 선선할 뿐 낮에 온도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홍수가 닥친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려움을 당하여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 이것이 토속신앙의 근원입니다. 우리들이 였다면 입을 통해서 보편적으로 나오는 첫 마디는 무엇이겠습니까? 에구머니(아이구 어머니), 나무아미타불, 오! 주여, 하느님... , 공자님, 아버지, 여보...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여러 가지가 혼재하면 다신교, 하나면 일신교라고 부릅니다.
2. 고대 오리엔트의 세계
가. 메소포타미아와 수메르인(sumerian)
아르메니아의 고원지대에 겨울동안 쌓였던 눈이 3,4월이 되면 녹기 시작하여 이 곳을 발원지(發源地)로 하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수위를 높이고 이곳에서 바그다드까지 고도차이가 300m나 되는 급경사를 타고 아래 쪽으로 흐르면 다시 바그다드에서 두 강이 합쳐지면서 페르시아만 까지는 완 경사가 되어 물이 빠지는 속도가 늘여져 홍수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닥치는 시간이 낮이면 그래도 가축을 위시한 가재도구라도 챙기지만 한 밤중에 닥치면 자면서 수장(水葬)되는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합니다.
최근 이 지역을 발굴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전체가 수장되어 층을 이룬 것이 10여층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 이삿짐을 풀고(B C 3100경)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수메르 인들은 점토로 벽돌을 만들어 성벽으로 둘러싼 우르, 라가슈, 우르크, 키슈, 니프르 등의 50여개 도시를 세우고 각 도시는 독자적으로 지구라트(zigurat)라는 신전을 세워 수호신을 모셨으며,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점토판문자(楔形文字)를 만들어 천지창조, 대홍수, 법전편찬 등의 기록을 남기고 60진법과 점성술, 도자기를 비롯한 우수한 공예, 건축 등의 기술을 교역을 통해 다른 지역에 전파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원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개방적인 지형은 이민족의 침입을 쉽게 해주어 수메르가 셈계의 무식한 유목민인 아무르 인들에게 쫓겨나(BC 1830) 역사무대에서 사라진 뒤 이곳은 이란계의 페르시아에게 통일될 때(BC 525)까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등등의 민족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나.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문명
"그들은 밭을 가는 수고도 이랑을 만드는 수고도 없이 씨앗을 뿌리고 돼지를 풀어서 밟게 하면 수확을 기다릴 뿐이다. 곡식이 익어 수확할 때가 되면 돼지를 풀어서 뿌리 채 뽑게 하여 이삭만 거둔다" Greece의 Herodotos(484-425 ?BC)가 이집트를 돌아보고 역사(historia)라는 저서에 남긴 기행문의 일부입니다. 나일강은 적도부근의 우림 지대와 에디오피아의 고원지대에서 각각 발원하여 여러 지류(支流)가 아스완을 지나면 강류(江流)가 하나로 되어 이집트의 나일이 됩니다.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는 석회암이 산지나 단구가 절벽을 이루어 강 폭이 매우 좁아 지는데 이곳을 상이집트라고 하며, 카이로에서 지중해까지는 넓은 Delta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를 하이집트라고 부릅니다.
나일강의 홍수는 정기적이면서도 매우 완만하여, 열대 우림 지대에서 3월에 우기가되면 강물이 불어나 6000여 Km의 긴 여정을 지나 3개월 후가된 6월에야 상 이집트에 도착하여 이집트 나일을 지나면서 홍수를 이루고, 건기가 시작되는 9월에는 상류로부터 점차 유량(流量)이 줄어져 이집트 나일에서는 12월에 물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1년 중 절반은 홍수로 절반은 평야가 되는 것입니다. 물이 빠지는 12월에 홍수가 남기고 간 기름진 충적(沖積)평야에 씨앗을 뿌려 3개월 후면 거두고 다음 홍수가 오기전에 다시 씨앗을 한번 더 뿌려 수확함으로서 토지의 이용률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홍수기간에도 남자들은 그물로 고기나 새를 잡고, 파충류를 잡아서 식용이나 각종 용도에 사용하고 멀리 나아가 짐승을 사냥하기도 하였으며, 여자들은 아마를 길러 길쌈을 하거나 가축을 돌보고 고양이도 길러서 쥐를 잡는데 이용하는 등 나일강의 혜택을 최대로 활용하였습니다.
파라오는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하였으며, 건조한 기후가 시체를 미아라로 만들고 나일강의 반복되는 변화에서 부활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어 파라오에게 보답하였으며,
나일강을 다스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책들이 결과적으로는 측량술, 기하학, 토목기술을 비롯한 의학과 수학을 발전을 이루었고 특히 놀라운 것은 천문학의 발달인데,
시리우스별이 어느 지점에 나타나면 홍수가 시작된다는 것을 상기하여 다음 홍수를 계산하여야 하였음으로 태양력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로마에 전해서 유리우스 력이되고 다시 그레고리 력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막과 석회암의 암벽은 자연성벽이 되어 중 왕조 때 힉소스 족의 침입을 받은 것이 고작이고 Alexander 대왕에게 망할 때 까지(B C 331) 30왕조가 이어지면서 찬란한 이집트문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도 이집트 인들은 나일강의 양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띠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강에서 동서로 조금만 벗어나면 황량한 사막이거나 석회암 산지로 되어있어 더 갈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1958년 아스완 하이 댐이 완성되면서 이전과 같은 홍수는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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